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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행동의 심리적 이해

<자료 출처>
J of Kor Soc for Dep and Bip Disorders 2009;7:73-77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김 민 혁·민 성 호

서론

18세기 이후 자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이래로 자살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하고 폭넓은 이론과 접근방법이 있어왔다. 이러한 접근방법에는 역학적, 철학적, 사회문화적,사회학적, 정신의학적, 정신역동적, 심리학적, 생물학적 방법이 있으며 각각의 접근방법 내에서도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다양한 접근방법과 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살이라는 행동이 여러 인자와 요인들이 결합된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며, 단일한 이론과 접근법만으로 전체의 자살행동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최근 수 십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생물학적 연구결과들, 심리적 이론의 협소함과 배타성에 대한 비판 등으로인해 심리적 요인만으로 자살행동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Faber나 Shneidman 같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려는 시도들, Mann의 스트레스 소인 통합모델(stress diathesis model)과 같은 심리적 요소와 생물학적 발견들을 함께 고려한 통합적 모델, 그리고 최근의 진화심리학적 이론 등을 통해 심리적 이해는 자살 행동을 설명하는데 여전히 중요한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 본 고에서는 자살행동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관점, 인지적 관점, 그리고 진화심리학적 관점에 대해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본 론
정신역동적 이해
정신분석학자들은 자살행동을 정신내적인 동인, 무의식적 환상, 발달적 상황이라는 세가지 틀 안에서 이해하려고했다. 정신역동적 관점은 자살행동을 이해하는데 다음과같은 도움을 준다. 첫째, 자살행동을 감정, 동기, 갈등의 측면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인관계의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있도록 해준다. 둘째, 자살에 대한 취약성, 보호인자를 유지하고 사용하는 능력, 자존감의 조절 등이 발달적으로 어떻게 기원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셋째, 주어진발달시기, 삶의 주기의 당면한 과제가 자살행동에 대한 취약성과 어떻게 관련되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준다.
그러나 자살에 대한 대부분의 정신분석학적 연구들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나 심한 성격장애를 가진 환자들을 통해이루어졌으며, 자살시도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가벼운장애를 가진 사람들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는 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전통적 정신분석학적 견해
자살에 관한 고전적 정신분석학적 이론은 심한 우울증의 정신역동적 기제를 설명한 프로이트의 저서“애도와 우울”에서 기원한다. 프로이트는 자살은 전치된 살해충동의 결과이며, 즉 내재화된 대상을 향한 파괴적 소망이 자신을향가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구조이론을 세우고 난 후에는, 자살을‘가학적 초자아에 의해 자아가 희생되는 것’이라고 재정의 하였다. Karl Menninger는 이러한 프로이트의 이론을 좀더 복잡하게 개념화하여, 자살행동이 세가지 소망(죽이고자 하는 소망, 죽임을 당하고 싶은소망, 죽고 싶은 소망)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Hendrick, Friedlander과 같은 정신분석가들은 자살 환자들이 이상화된 내적 대상과의 결합, 재결합의 환상을 가지고 있음을 관찰하고 자살행동에서 성애적, 리비도적 측면이 공격적 측면만큼이나 중요함을 제안하였다. 이러한주장은 다음에 기술한 대상관계이론적 견해나 대인관계적측면에서 보는 관점과도 일부 유사한 면이 있다.

대상관계이론적 견해
Melanie Klein은 Freud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자살이 내재화된 대상에 대한 공격이지만, 이 공격은 대상의 악한 부분을 향하며, 선한 내적대상을 보존하려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Guntrip은 우울성 자살(depres-sive suicide)과 분열성 자살(schizoid suicide)를 구별하였다. 우울성 자살은 자기를 향한 공격성과 증오에서 생기는 것이며, 분열성 자살은 재탄생에 대한 환상화된 방법으로서 죽음을 열망하는 것으로 보았다. Margaret Mahler는 자살환자의 발달적 문제를 공생기(symbiotic phase)에서 화해기(rapprochement subphase)로의 이행에 실패한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결과로 타인을 유별한 개인이 아닌 자신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대인관계의 경향이 생긴다고 하였다. Asch는 이러한 상황을“공생적 대상선택(symbiotic object choice)”라고 하며 자살행동의 일차적 목표는 공생적 어머니와의 융합이라고 보았다. 또한Asch는“비밀스러운 집행인(hidden executioner)”이라는 가학적이고 박해하는 내적 대상과 고통 받는 희생자 사이의 투쟁을 자살의 반복적인 주제로 생각하면서, 이 투쟁에서 희생자들은 자살만이 유일한 탈출구로 믿게 된다고하였다. Fenichel은 자살행동에 있어 공격성의 역할을 덜중요시 하면서, 자살의 동기가 재결합의 환상-상실한 사랑하는 대상과의 즐겁고 마술적인 재결합 또는 사랑하는 초자아상과의 자기애적 결합-을 충족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한편 Maltsberger는 자기 심리학적 이론으로 자살행동을 설명하였는데, 그는 자살 환자들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지나치게 자기대상(self-object)에 의존하는 사람들로서, 버림받는 상황에 처할 때 외로움, 자기멸시, 살인적 분노의 위기에 취약하여 자살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자살행동의 대인관계이론적 측면
자살행동에 대한 대부분의 정신분석학적 관심은 정신내적 기제를 밝히는 데에 있었다. 한편 대인관계가 자살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찰은 초기부터 있어왔지만, 대인관계이론적 측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Adler는 충분하지 않은 사회적인 관심으로 인해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으로 동일시 한다고 하였으며, 자살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라고 보았다. Sullivan도 자살의 대인관계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자살은 증오하고 원망하는다른 사람들과의 통합이 반영되어 나타나는 대인관계에서의 파괴적인 행동이라고 보았다. Menninger는 자기자신을 공격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언급하였으며, Zilboorg도 자살의 동기에서원한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자살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시사하였다. Friedlander는 환자사례연구를 통해 정신내적 갈등이 아닌 가족들의 관심, 걱정을 유도하고자 하는 소망이 자살동기의 주요한 주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Friedman은 자살을 시도한 청소년의 정신치료에 대한 연구를 통해, 환자들이 그들의 어머니와 양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식으로 지속되는 관계가 자살 행동의 주요한 결정자임을 관찰하였다.

애착과 자살행동
Adam은 애착이론이 자살행동을 이해하는 유용한 개념적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애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불안정한 관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관계가 깨질 위험에 대해 매우 민감하여 강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때, 자살시도는 타인들에게 고통의 신호를 보내고, 자신을 거절한 것에 대해 타인을 처벌하며, 타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결합을 재형성하도록 강요하는 기능을 한다. 반복적으로 안정적 애착형성에 실패하는 것은 극도의 사회적 고립과 소외감을 야기하고, 이것은 자살의 한 위험요소가 된다. Adam은 자살에 대한 일반적 모델을 제안하면서, 초기 부모양육의 결핍, 단절을 소인으로, 애착대상에 대한 현재의 위협을 촉발인자로, 정신질환과 약물, 알코올 남용을 병적 애착이 더 쉽게 드러나게 해주는 기여인자로 언급하였다. 학령전기 아동의자살에 관한 연구에서 병적인 애착이 자살과 관련이 있었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자살사고와 관련이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인지행동학적 이해
최근 우울증과 자살행동에 대한 인지행동적 접근은 많은관심을 받아왔으며, 특히 인지적 접근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인지적 접근을 이론적 배경으로 하는 인지행동치료,변증법적 행동치료 등이 우울증과 반복적인 자살시도환자의 자살행동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면서,자살환자를 치료하는 좋은 방법으로 제안되었다.
자살행동에 대한 인지적 접근은 자살행동의 세분화된 분류를 가능케 하고, 자살행동에 대한 심리적 측정도구를 개발하고, 중요한 심리적 요인으로서 무망감(hopelessness)을 발견하고, 자살행동의 인지적 특징을 밝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망감을 결정적 매개인자로 하는 자살행동의 모델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살연구에 기여하였다. 자살행동에 대한 인지적 접근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두 요소는 무망감과 문제해결능력이다. 즉, 무망감과 빈약한 문제해결능력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자살자로 하여금 자살이 해결불가능한 문제들의 유일한 해결책인 것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사고경향을 만들어 내게 된다는 것이 인지적 접근에서보는 자살행동에 대한 가설이다.

무망감
무망감의 평가는 2가지 이유에서 중요하다. 첫째, 무망감이 있는 환자는 치료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무망감은 자살사고, 자살시도, 자살로 인한 사망의 전조이고 위험인자이며 또한 자살시도 후 자살사망의 예측인자이다. 또한 무망감은 정신질환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자살행동의 위험요인이며 종종 시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서는 자살에 대한 생각이 감소하는 것에 앞서 무망감이 먼저 좋아진다는 보고도 되었다.

문제해결능력의 결핍
자살환자에서 흔히 발견되는 인지적 오류들, 예를 들면 역기능적 태도, 이분법적 사고와 사고의 경직성, 대안적 해결방법을 만들고 실행하는 문제해결 능력의 결핍은 자살삽화이전에 선행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인지오류와 빈약한 문제해결능력 때문에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다루지못하게 되고 이 결과로 무망감이 생긴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들은 자살 시도자에서 무망감과 대인관계 문제해결능력이 관련이 없고, 대인관계기술훈련이 무망감을 감소시키지 못한다는 결과를 보고하여, 무망감과 문제해결능력은 자살행동에 독립적으로 작용함을 시사한다.
자살자에서 관찰되는 문제해결능력의 결핍이 한 개인이가지고 있는 특성(trait)인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으로인한 일시적 상태(state)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었다. 인격장애나 알코올의존이 있는 반복적 자살 시도자에대한 연구에서는 문제해결능력의 결핍이 특성으로 생각되는 반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시도자에 대한 연구에서는문제해결능력의 결핍이 우울증 삽화에서 벗어나면서 호전되는 양상을 보여 상태의존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이가지고 있는 정신병리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문제해결능력의 결핍이 지속적일 수도, 일시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수 있겠다.

진화심리학적 이해
자살은 유전자를 전달할 개체자체를 사라지게 만들어 더이상 유전자를 전달할 기회를 완전히 박탈한다는 점에서영아살해와 함께 진화적으로는 언뜻 잘 이해되지 않는 대표적인 비적응적 행동이다. 그러나‘포괄적 적응도 이론(in-clusive fitness theory)’을 자살행동에 적용하면 다음과같은 설명이 가능하다. 포괄적 적응도 이론이란 한 개체는다른 친족들과 많은 유전자를 공유하므로, 친족들의 생식을 촉진시키는 행동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가능성을 높여 자신의 진화적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개체가 잠재적 생식능력이 낮고 자신의 생존이 유전자를 공유한 친족의 생식활동에 부담이나 방해가 될 경우,그 개체의 생존이 오히려 자신의 유전적 이익에 도움이 되지 못하므로 그 개체는 자살행동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De Cartanzaro는 수학적인 공식을 사용하여 이를 설명하기도 하였다.
일부 연구들은 자신이 가족, 친족들에게 부담이 된다고인식할 때 자살사고, 우울감, 자살사고, 자살시도가 늘어난다는 결과를 보여주어 이 이론을 지지해준다. 특히그의 이론은 생식능력이 감소하고 가족들에 대한 의존도가높은 노인에서의 자살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그러나자살사고가 반드시 자살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과 생식능력이 높은 청소년에서 초기 성인기에 자살률이 높아지는 이유가 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 이론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반면에 젊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는 가족에게 부담이 된다고 느낄수록, 자신의 건강이 나쁘고 이성관계의 만족도가 낮을수록, 어머니가 젊을수록 자살사고가 높아진다는 결과를 보여주어, de Catanzaro의 이론이 노인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자살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기타 이론적 관점
Schneidman은 심리통(psychache)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자살을 직접적으로 정신적 고통과 연결시켰다. 그는중요하고 필수적인 심리적 요구가 좌절되면 다양한 부정적감정이 생겨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만들고, 이것이 자살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Baummeister도 유사하게자살행동을 정신적 고통으로부터의 도피로 이해하였다. 개인이 자신의 성취가 자신의 기대나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인식하고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게 되면 자신에 대해 실망하게 되고, 이로 인한 고통이 참을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고통으로부터의 도피수단으로 자살을 택하게 된다고 하였다.그러나 Schneidman과 Baummeister는 정신적 고통을 요구의 좌절이나 자신에 대한 실망에서 기인하는 것으로만 한정하여, 다양한 원인과 감정에서 생길 수 있는 정신적 고통을좁은 이론적 정의에만 국한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Faber는 희망을 중심개념으로, 발달심리학적 모델을 사회적 문화적 연구결과와 통합하여 자살에 대한 일반적이론을 만들었다. 이 모델에 따르면, 자신감을 상실한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서는 상황에 처하면 희망의 상실을 경험하고, 이는 자살로 이어지게 된다. 유기, 멸시, 죄책감 유발과 같은 부모상에 대한 잘못된 경험이 개인의 자기 유능감(self-competence)을 손상시키고, 이들은나중에 절망감을 쉽게 느끼는 경향을 가지게 되어, 참을 수없는 삶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자살을 택하게된다. Faber의 모델은 사회적 인자들과 심리학적 변수들을모두 고려한 포괄적 이론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결 론

본고에서는 정신분석학적 관점, 인지행동적 관점, 진화심리학적 관점, 기타 심리적 관점 등 다양한 심리이론을 통해자살행동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각각의 이론들은 자살이라는 복잡한 사건의 다양한 측면들을 모두 아울러 포괄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자살에 이르게 되는단일한 심리적 경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다층적인 정신심리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최후의 비극적 결과를초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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