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소고
- 유충선
- 3월 14일
- 3분 분량

혼란스러운 나라 정세와 제주 항공 참사로 연말 연초 내내 약간 우울한 상태로 지냈다. 그런 와중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즐거움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새벽예배 설교를 준비하면서였다. 역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은혜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 여운이 남아서인지 행복에 대한 주제가 머리에 떠나질 않았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막상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흔히 ‘건강하고 잘 살면 되지’라는 통속적인 대답이 나오기에 십상이다. 과연 그럴까?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이 정의처럼 만족감과 기쁨은 현대 뇌과학에 근거한 행복에 관한 연구에서 핵심 요인이다. 행복은 뇌에서 생성되는 것이며, 크고 작은 기쁨의 총합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한다. 뇌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감정을 긍정적 정서(pleasure emotions)로, 위협이 되는 감정을 부정적 정서(unpleasure emotions)로 구분하고 빠르게 반응한다. 행복은 기쁨과 유사한 감정들, 즉 재미있다. 통쾌하다. 즐겁다. 신난다. 좋다 등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아쉽게도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어떤 것이라도 모두 일시적이다. 아무리 큰 기쁨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부정적 정서보다는 긍정적 정서를, 큰 기쁨보다는 사소한 기쁨을 더 자주 느껴야 한다. 즉, 기쁨의 강도보다는 빈도가 중요하다.
행복과 관련된 뇌의 작용은 무엇인가? 이 주제와 관련하여 수없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명확하진 않은 것 같다. 신경전달물질 중 도파민, 세로토닌, 그리고 옥시톡신 등이,뇌의 부위로는 시상하부, 중뇌 번연계 보상회로, 복측 선조체, 왼쪽 전전두엽 피질 등이 행복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먼저는 사람이고, 그다음은 일이다. 이 점에 대해 거의 모든 학자가 동의한다. 무조건 사람을 많이 만나기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교제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버는 일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맞고 좋아하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할 때다.
하지만 뇌과학자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인간에게는 영적인 기쁨이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느끼는 기쁨 말이다.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기쁨을 수없이 많이 말하고 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pleasant places)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delightful inheritance) ”(시 16: 6). 여기서 ‘아름다운 곳’이란 ‘기쁨을 주는 장소’이며, ‘기업이 아름답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기쁨이 넘치는 유산’ 또는 ‘마음에 쏙 드는 유산’이란 뜻이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에 만족하며 기쁨이 넘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세상에 기쁜 일이 많지만,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하신 일로 인한 기쁨은 세상 그 어떤 기쁨보다 크고 만족한 것이다. 다윗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오늘 웃으며 살 수 있고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의 영적인 기쁨은 모든 것이 형통하고 평안한 상황에서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시편 5절에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기업은 나에게 할당된 산업이란 뜻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분깃을 말한다. 여기서 ‘잔’은 축복의 잔이나 저주의 잔, 또는 고난의 잔을 의미한다. 더 많은 주석가들이 전자보다는 후자의 의미로 본다. 주님께서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할 때 그 잔이다. 어떤 연구자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여호와여, 나에게는 할당된 산업, 즉 당신께서 은혜로 나에게 베풀어 주신 나의 기업이 있습니다. 또 당신께서 나에게 마시라고 주신 나의 고통의 잔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께서 나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베푸시는 것을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며, 또한 당신께서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실 때도 감사함으로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의 소득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다윗은 평안할 때뿐만이 아니라, 고난의 때에도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었다. 어떤 경우든지 결국 하나님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윗뿐만 아니라 오늘 주님을 믿는 우리도 그렇다.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많이 가졌든지 못 가졌든지, 또는 평안하든지, 어려운 상황이든지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다. 인간의 뇌의 작용이나 인간관계와 일을 통해서 느끼는 기쁨을 초월하는 영적인 기쁨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신3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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