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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픔



최근 한 성악가가 별세했다. 몇 개월 동안 그가 부르는 노래를 자주 들어서 그런지 전혀 개인적인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찔끔 났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 것 같다. 그분의 노래를 들으며 존경심과 친밀감을 느낀 탓일까?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무수한 사별이나 이별을 경험한다. 부모, 가족, 친구, 가깝게 지냈던 교우와 지인, 그리고 반려동물 등 이별 대상이 수없이 많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별을 하며 살아갈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때로는 굉장히 충격적이다. 예기치 못한 이별은 더욱 그렇다. 이별로 인한 상실은 사람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파산, 이사로 인하여 정든 환경을 떠나는 경우, 애인이나 친구 관계의 결별, 젊음이나 건강, 그리고 명예를 잃는 경우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상실에 대한 반응을 애도(mourning)라고 부른다. 애도를 어떻게 하느냐는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애도란 슬픔을 표현하는 상태를 말하며,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등을 거치면서 심리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말한다. 애도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 이유는크게 두 가지다. 먼저, 과거에 애도하지 못한 이별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새로운 이별을 당할 때 더 깊이 절망하고 더 오래 슬퍼한다. 당면한 이별이 오래된 상실의 감정들을 솟구쳐 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나약하고 미성숙하다고 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그런 사회에서 산다면 사람들은 슬픔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상실의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믿음이 부족한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에 더 억압이 심할 수 있다.

한 성악가의 소천 소식에 내가 울컥한 이유를 찾은 것은 교회에서 어떤 사모님을 우연히 만나 나눈 짤막한 대화였다. 그 사모님은 제가 돌보는 고양이들이 잘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다 잘 있는데 몇 달 전에 한 마리가 죽었다”라고 대답하는 순간 울컥하고 말았다. 그 성악가의 소천 소식에 과거의 억압된 상실의 슬픔이 올라온 것이다. 오래전이긴 하지만, 신앙 때문에 슬픔을 억압해서 애도를 잘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내가 제대하던 해에 어머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신 후 9일간 뇌사 상태로 계시다 소천하셨다. 당시 집 근처에 있던 교회를 다녔었는데, 감사하게도 그 교회 담임 목사님과 성도들이 여러 번 심방 오셔서 기도를 해주셨고, 소천하신 후에는 위로 예배를 집례해 주셨다. 그런데 위로 예배를 드리러 오셨던 권사님 한 분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님이 천국 가셨는데 왜 슬퍼하느냐? 믿는 사람은 울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때 초보 신앙인이었던 나는 그 권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왜 이리 믿음이 부족하지?”라고 생각하고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잘못된 가르침이었다. 아무리 어머님이 천국에 가셨더라도 슬프고 눈물이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꼭 필요한 애도 반응이었다.

애도 과정을 잘 지나지 못할 때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 이성과 사귀면서 결혼까지 생각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진 후 상처가 너무 커서 다른 이성을 만나지 못하고 혼자 사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친한 친구와 다투고 관계를 단절당하고 난 후 수년이 지났지만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다니며 방황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일이나 운동에 심취해서 살기도 한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이토록 상실로 인해 정신적인 몸살을 앓거나 절망하거나 죽기까지 하는 것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상실 대상을 유아기의 엄마와 같은 애착 대상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 엄마와 충분히 분리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애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상실에 대해 많이 슬퍼하고 우는 것이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면서 상실한 대상을 마음에서 떠나보내고 분리가 일어날 수 있다. “이제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마음이 들면 애도 과정이 끝난 것이다. 애도 과정을 잘 겪으면, 이전보다 심리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더 자신감 있고 자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애도 과정이 끝난 후에는 떠난 사람을 우리 마음속에 좋은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떠난 대상의 가치관이나 좋은 특성과 인격을 받아들여서 나의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심리적 동화’(psychological assimilation)라고 한다. 의학에서 ‘동화’란 음식을 먹으면 위장에서 소화되어서 그 영양분이 먹은 사람의 피와 살이 되어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떠난 대상이 더 이상 물리적으로는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심리적 동화를 통해 언제나 마음속에 살아 있고 함께 할 수 있다. 주님이 제정하신 성찬식도 심리적 동화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제자들은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주님의 사랑과 함께하심을 느끼고 주님처럼 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사별이든 이별이든 심리적 동화를 통하여 우리를 떠난 사람의 좋은 특성과 인격, 그리고 신앙이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는 더 좋은 성품과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별이 우리에게 아픔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값진 선물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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