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사람인가를 구분하는 지표 중 하나가 '선물을 잘 받는 것'이다. 물론 선물을 잘 받는 것만큼 주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선물은 사회적 관계가 아니 가족이나 친구 등의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물을 받을 때 보통 "뭘 이런 걸 다 주고 그래! 안 줘도 되는데"라고 반응한다. 선물을 받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고 고맙지만,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속물 같아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지 않으면 주는 사람이 섭섭해할 것 같아 그렇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우리가 좀 더 행복하게 살려면 선물을 기분 좋게 받아야 한다. '선물을 기분 좋게 받는 것'은 고마운 마음과 기쁜 마음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유쾌하게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럴 때 주는 사람도 마음이 훨씬 즐겁고 선물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연구에 의하면, 기분 좋게 선물을 받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평생 더 많은 선물을 받게 된다고 한다.
선물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생일이나 명절 선물처럼 물질적인 것과 칭찬, 공감, 인정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이다. 선물은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고맙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물질로 표현할 때 주는 사람의 진심이 전달 된다. 하지만 비물질적 선물을 잘 주고 받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시간은 금이다'란 말이 있다. 시간은 가장 귀한 비물질적 선물이다.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우리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비물질적인 선물이 친밀한 관계에서 더 필요할 수도 있다.
선물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과도 주고받을 수 있다. 나의 경험을 예로 들어 보겠다. 어느날,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길고양이 어미와 새끼 다섯 마리가 나타났다. 새끼들이 너무 귀여워서 가끔 찾아갔는데, 어느 날 고양이들이 사라졌다가 약10일 후에 다시 나타났다. 그땐 어미와 새끼 두마리가 남아 있었다.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새끼들이 몹시 불쌍했다. 그때부터 남은 두 마리가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 싶어 아예 조석으로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 녀석들은 많이 컸고, 새끼들만 남겨 놓고 어미는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녀석들이 나를 심하게 경계하더니, 지금은 가까이 다가와서 땅바닥에 발라당 누워 재롱을 떨며 쓰다듬어 주길 바란다.
녀석들이 잘 자라고 있는 걸 보면 매우 흐뭇하다. 그 흐뭇함은 녀석들이 내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다. 어느 목사님과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면서 새끼 고양이 얘기를 들려주었더니, 그 얘기를 하는 동안 내가 너무 기뻐하고 표정이 밝아지더라고 말했다. 그때 녀석들이 내게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녀석들에게 작은 것을 주었지만, 녀석들은 내게 큰 것으로 보답했다. 그 목사님은 내게 보았던 그런 기쁨 없이 살아온 것이 자신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최근, 녀석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과 얘기를 주고받는 기회들이 늘어가고 있다. 녀석들이 아니라면 이웃에 살지만, 전혀 몰랐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이 녀석들이 내게 주는 두 번째 선물이다. 현대 행복론이라 할 수 있는 긍정심리학에 의하면, 행복은 혼자 동떨어져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느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님께 크고 귀한 선물을 받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사실, 삶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하나님의 선물을 잘 받아야 한다. 그것은 비록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생명과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이야기로 채워가며 기쁘게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선물을 잘 받을 때, 우리는 천국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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